그래 좋다 이거야. 마침 덥고 짜증나는데, 파괴적인 영상에서 오는 오싹함과 화면을 내내 채우는 얼음 속에 파묻혀서 두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게다가 영화와의 시너지이펙트를 고려해서인지 온 힘을 다해 에어컨을 돌리는 메가박스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표한다.
그러나 사실 이 영화가 여름의 무더위를 쫒는 데 있어 세운 가장 혁혁한 공은, 영화의 내용도 아니요 메가박스의 에어컨도 아닌, 바로 영화 제목에 있다.
떠올릴 때마다 척추를 따라 냉기를 흐르게 만드는 그 이름. [투모로우].
아니, 하루는 어디다 내다 버린거지? 미국에서 내일모레는 우리나라 시간으로 보면 내일이 된다는, 시차를 고려한 정교한 번역인가? ...그럴 리는 없고. -_- 하루 잘라내는 게 그리도 좋다면, '80일간의 세계일주'는 '79일간의 세계일주'가 되고, 심지어 '식스센스'는 '오감'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더 데이 애프터 투모로우] 라고 자르지 않고 쓰려니까 너무 영화 제목이 길어서 도무지 어색해 보였다고 변명을 할 수도 있다. 관사 the 빼도 [데이 애프터 투모로우]는 발음도 잘 안될 뿐더러 너무 길다. 그래 좋다. 그러면 침을 난사하지 않고는 도저히 발음이 불가능했던 [로드 투 퍼디션]은 뭐였는데? 포스터 제대로 뜯어보기 전까진 [War War Soldiers]인줄만 알았던 [위 워 솔져스]는 또 어떤가?
번역이라는 게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이 영화의 경우 특히나 번역이 쉽지 않았다는 점도 인정할 수 있다. 실제로 day after tomorrow 는 직역하면 '내일모레' 가 되지만, 여기서는 앞에 'the'를 붙여서 좀 더 특수한 의미가 붙게 되고, 따라서 '내일의 다음날', 즉 다시 말해 '내일 너머..'라는 식의 의미를 같게 된다. 물론 '내일모레'라는 원래의 관습적 의미가 섞여서 중의적 표현이 됨은 물론이다. 따라서 번역하기가 아주 까다로운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투모로우]로 간단명료하게 해치워 버린 건 좋게 봐 줄 수가 없다. 저 정도 되면 번역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 그럼 잘난 네녀석이 해봐! 라고 한다면 나 역시 뾰족한 수는 없다. -_-; 잘 해봐야 '내일 이후' 정도? (그래 놓고 영화 대사 중에 '내일 이후'라는 문구를 집어넣었다면 아쉬운 대로 아귀는 맞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성의없음을 풀풀 풍기면서 원제목의 발음 그대로 옮겨놓는 게 최선의 방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직역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제목의 의미를 잘 살려 내는 번역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실제로 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원제가 [Ghost]였던 [사랑과 영혼]. 저걸 '고스트' 라고 했다거나 '유령'이라고 했다고 상상을 해보라. 졸지에 공포영화가 되어 버리고 말았을 터. 스타워즈 시리즈의 번역 역시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다. 물론 [스타워즈]를 [우주전쟁]이라고 번역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는 봐 줄 수 있다. 번역센스가 빛을 발하는 것은 부제, 즉 각 편의 소제목에서다.
Star Wars (episode 4) : A New Hope - 스타워즈 : 새로운 희망
Star Wars (episode 5) : The Empire Strikes Back - 스타워즈 : 제국의 역습
Star Wars (episode 6) : Return of the Jedi - 스타워즈 : 제다이의 귀환
Star Wars (episode 1) : The Phantom Menace - 스타워즈 : 보이지 않는 위험
Star Wars (episode 2) : Attack of the Clones - 스타워즈 : 클론의 습격
Star Wars (episode 5) : The Empire Strikes Back - 스타워즈 : 제국의 역습
Star Wars (episode 6) : Return of the Jedi - 스타워즈 : 제다이의 귀환
Star Wars (episode 1) : The Phantom Menace - 스타워즈 : 보이지 않는 위험
Star Wars (episode 2) : Attack of the Clones - 스타워즈 : 클론의 습격

역시 자네밖에 없네, 베이더
문학 분야에서는 이런 성의없는 '소리나는대로옮기기'나 [투모로우]에서 보여줬던 궁극의 필살기 '하루줄이면서소리나는대로옮기기' 기술이 별로 쓰이지 않는 듯하다. 원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였던 [뷰티풀 마인드]는, 책의 경우 [아름다운 마음]으로 번역되어서 나왔다. 책의 경우가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경우는 번역상의 어려움이 그리 크다고도 할 수 없는 경우인데도 '소리나는대로옮기기' 기술이 남발되고 있다.
모든 영화 제목을 간결하면서도 의미의 손실 없이, 눈길을 잡아끌게 번역해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최소한 성의라도 보여 달라 이거야.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해 주는 특선영화가 [홈얼론]이 아닌 [나홀로 집에]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겨울에 가뜩이나 추운데 등골까지 시리면 고통스러울 테니까.
+ 최근 개봉한 [착신아리]도 어처구니없는 번역센스라던데, 일어 지식이 전무한 관계로 얼마나 어이없는지는 체감할 수 없다. 사람들 반응을 보면 [투모로우] 못지않게 제목만으로도 더위감소효과를 내는 모양이던데.
+ 굳이 사족을 붙이자면, 투모로우에 등급을 매긴다면 별 두개. ★★ 주인공 배우 제이크 길렌할과 에미 로섬(!)은 참 마음에 들지만; 쩝.


2004/07/07 01:29
2004/07/07 10:25
2004/07/15 23:50
두 커플의 영화가 모두 크로스오버를 점령했군. ㅎㅎ
제이크 원츄.
2004/07/20 18:44
이젠 그놈의 광고글 보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살의가 불끈불끈...)
태터툴즈로 새롭게 시작하게 된 것 축하하고.
앞으로 자주 들르마. ^^ (링크란 빨리 정리해야하는데...)
"착신아리"는...;;; 휴대폰에서 메시지가 도착하면 뜨는 말이라는데
착신은 말 그대로 착신. "아리"는 "있음"이라고 해.
네가 말했듯이... '소리나는대로옮기기' 기술의 남발이다.
포스터에 작은 글씨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라고 적은 게 마지막 남은 양심이라고나 할까.
개인적으론 "메시지 도착"이라고 번역하는게 나았으리라고 보는데.
2004/07/21 15:37
그 친구 누나도 배우라는 이야기도 들은 듯 합니다만..
가넷/ 태터툴즈로 바꿨습니다. 오랜만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JH님 홈페이지에 들러보고 와 이거 좋구나 하고 충동적으로 바꿔버렸죠. ^_^;
그러나 방명록은 적어도 당분간은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에.. 광고글을 영원히 안 보게 되는 날은 아직 좀더 기다려야 할 듯 하군요. 며칠전에도 하나 써놓고 가던데;
착신아리. 역시 소리나는대로옮기기 기술이 빛을 발하는군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