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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은 곧 책임이다. 죄를 지은 자에게는 벌을 내림으로써 책임을 지게 한다. 약속을 한 자에게는 그 약속을 지키게끔 하고, 이를 어겼을 때는 손해를 배상하게 함으로써 자신이 한 약속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한다.
책임은 사후적인 것이다. 행동규범을 세우는 것이 먼저 있고, 그 행동규범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그 다음이고, 규범에 맞지 않은 행동이 벌어졌을 때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맨 마지막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책임은 가장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규범을 세우는 것은 쉽다. 그에 맞춰서 행동하는 것은 그보다 어렵다. 그러나 규범에 맞춰 행동하지 못했을 때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이는 당장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분명하다. 생활계획표를 번지르르하게 짜 놓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극기, 인내, 근면성실 등 온갖 좋다는 단어는 죄다 좌우명으로 가져다 써서 벽에 걸어 놓는 것까지는 언제라도,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계획표에 따라 하루하루를 사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벽에 아무리 극기라고 써 붙여 놔도 순간의 충동을 참지 못하고 지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계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책임을 지는 일이라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책임은 이처럼 너무나 어려운 것이지만, 한편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궁극적으로 우리가 사는 사회를 지탱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것이다. 사람들이 올바른 것으로, 가치있는 것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운 것으로 생각하고 합의하여 만들어낸 규범들(근대 국가에서는 ‘법률’이 가장 대표적인 형태이다)은, 책임이 없다면 한갓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규범은 그것이 지켜질 때에만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규범을 지키는 일은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움으로써만 가능하다. 규범을 어기는 사람들 어느 누구도 그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여기서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규범이 장기적인 안목과 합리적인 양보에 따른 타협의 산물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종이에 훌륭한 글귀를 써서 걸어두는 것은 쉽다.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서로 차분하게 의논하고 토론해서 규범을 제정할 때는, 서로의 단기적인 이익을 조금씩 양보해서 가급적이면 모두가 이익이 되게끔 규범의 내용을 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문제는 현실에서 순간순간의 갖가지 욕망과 충동에 맞닥뜨리게 되면 누구나 단기적인 이익만을 좇게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고, 이를 책임 없이 방치하다 보면 결국 사회는 모두가 매 순간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사회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반면 모두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회는 결국 모두가 서로의 행위를 신뢰하는 사회가 된다.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고, 좋은 일을 한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는다는 신뢰가 구축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기꺼이 대의를 위해 자신의 개인적인 작은 이익을 희생한다. 약속을 깨는 사람은 반드시 그 댓가를 치른다는 신뢰가 구축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기꺼이 상대방과 거래를 하려고 하는 법이다.

가인 김병로의 삶은 구한말부터 일제시대를 거쳐 격동의 해방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나라의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덕분에 80여 년에 걸친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은 곧 지금 현재의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규정한 지난 80여 년의 세월을 돌이켜보는 것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그 지난 세월은 ‘책임의 부재’라고 요약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일제에 협력하여 부를 축적하고 조선 사람들을 핍박했던 친일파는 그들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나마도 뒤늦게 구성된 반민특위의 활동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일제시대 때 악명 높은 경찰이었던 노덕술 등을 체포하자 이들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질 새도 없이 도리어 경찰이 반민특위의 본부를 습격하고 특위요원들을 연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6∙25 전쟁 당시 ‘안심하라’는 공식발표를 믿고 서울에 남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대통령과 정부 인사들은 도망가며 한강 다리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는 전세가 회복되자 돌아와서 그 때 떠나지 말라는 그들의 말을 믿은 사람들을 부역자로 몰아 처벌하려 들었다. 양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신체의 자유 등 온갖 기본권을 헌법에 버젓이 명시해 두고도 정작 정부에 반대하는 견해를 가진 자들은 그 입을 막고, 신문을 정간시키고, 부당구속과 고문을 일삼았다. 규범을 믿고 따른 자들은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 규범을 어긴 자들은 책임을 지기는커녕 그때그때마다 그들이 취했던 기회주의적 태도 덕에 득세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책임의식의 상실, 신뢰의 부재로 신음하고 있다면 그 큰 이유는 이러한 책임이 실종된 현대사에 있다고 생각한다. 책임이 사라진 지난 수십 년의 결과가 바로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사회, 영화 ‘괴물’에 잘 드러난 것처럼(괴물에게 잡혀간 현서를 필사적으로 찾는 건 결국 가족들이지, 국가는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다)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아둥바둥 자기 앞가림을 해야만 겨우겨우 자기 이익을 지켜낼 수 있는 사회인 것이다.

‘책임 부재’의 현대사에서 가인 김병로 선생은 홀로 외로이 버티고 서 있는 단단한 바위 같다. 그는 밀려오는 기회주의의 파도 속에서도 원칙을 놓지 않는다. 일제의 탄압에도, 해방 후에는 이승만 독재 정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그는 자신의 소신을 지킨다. 가인은 책임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해방 이후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것을 일관되게 못마땅해 했고, 결국 그 때문에 스스로 몸담았던 한민당에서 탈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법원장으로 있던 시절 반민특위에 대한 이승만 대통령의 탄압에 맞서기도 하였다. 이승만 하야 후에도 “일제잔재의 경찰관을 재등용하지 말 것, 이승만정권에 추종아부한 각계 간부를 과도정부의 모든 기구에서 제거하고 숙청할 것”을 요구했고, “죄형법정주의, 형벌불소급의 원칙, 만인의 법 앞의 평등의 원칙 등 민주주의의 기본원리가 파괴된다”는 재야 법조인들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이승만 정부 시절의 부정선거원흉과 부정축재자를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장까지 지냈던 가인이 과연 죄형법정주의, 형벌불소급의 원칙, 만인의 법 앞의 평등의 원칙을 등한시했던 것일까? 나는 가인이 사법, 나아가 법치의 핵심이 곧 책임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생애에 걸쳐 일관되게 그는 잘못했던 사람들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나 일제가 물러난 직후의 해방기나 이승만이 하야한 직후 과도정부가 들어선 시기와 같이, 표면적으로 나타난 큰 변화 탓에 사람들이 보다 세세한 책임추궁에 자칫 소홀해지기 쉬운 격변기일수록 가인은 앞장서서 책임의 확보를 외쳤다. 그의 목소리가 널리 퍼져나가지 못하고 작은(그러나 힘찬) 외침으로만 남았다는 것이 무엇보다 안타깝다.

규범 그 자체, 더 나아가 그 규범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를 지탱하는 마지막 단계의 주춧돌이 책임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 가인이 책임 확보를 본업으로 하는 사법부의 초대 수장이 되었다는 사실은 안타까움이 즐거움보다 많은 우리 현대사에서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그의 책임성은 비단 사회규범의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고 개인적 규범의 차원, 즉 윤리와 도덕의 차원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법관은 남들로부터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결벽에 가까운 청렴생활을 했던 것, 공과 사를 칼처럼 구분했던 것 등 그는 실로 도덕률에 어긋남이 없는 삶을 살았다. 그토록 스스로 엄격하게 책임을 지며 살았던 그였기에 사회 문제에 있어서도 책임을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렇기에 그가 내리는 판결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가인을 보며 책임을 생각했다. 그의 삶의 모습이 담긴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나도 책임을 지기로 결심했다. 그 때문에 독서감상문 제출일 새벽이 돼서야, 잠자리에 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가인 김병로 평전’의 독서 과제가 주어지고 난 뒤 그 긴 여름 동안 차일피일 책 읽는 것을 미뤄 온 내 게으름에 대하여 책임을 지기 위해서다. 밤이 깊어지고 마감시한이 다가올수록 대충 넘겨 읽는 발췌독만으로 감상문을 작성하고자 하는 유혹에 계속 부딪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80평생을 통해 책임을 몸소 보여 준 사람의 삶에 대해서 무책임하게 글을 쓴다는 것은 너무나 자기모순적인 짓이었다. 지난 두 달 간의 나태함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는 작은 행위를 하는 것 - 책을 완독하고 생각을 정리해 글을 쓰는 것 -이 가인의 후배로서, 가인의 손길이 아직 남아 있는 법전을 뒤적거리며 살아갈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가인의 비문에는 “비록 몸은 가셔도 조국을 위한 기원은 살아 있어 길이 나라의 힘이 될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나라의 힘까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이 책을 읽으며 그가 내게 보여 준 모범이 길이 내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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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2 22:43 2009/05/22 22:43
  1. onecent
    2009/05/22 22:46
    이건, 연수원 1년차 때 여름방학 과제였던 '가인 김병로 평전' 서평으로 쓴 것이다.
    글에도 썼듯이 제출일 당일 새벽에 졸린 눈을 비벼 가면서.

    요즘 검찰시보를 하면서, 사람들을 수사하고 기소하고 구형을 하면서 새삼 '책임'이 화두로 떠올랐다.
    전에 써 둔 것이 생각나서 곱씹어 보면서 생각이나 정리할 겸 여기에 올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