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24일, 코엑스 메가박스 10관.
난 캐리비안의 해적 1편을 극장에서 두 번이나 봤다. 씩씩하게 아름다우신 키라 나이틀리. 영화사에 길이 남을 캐릭터 잭 스패로우. 그리고 모험으로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테마음악(요새 이 음악 티비에서 도용이 심하다). 캐리비안의 해적은 그해 여름 개봉한 다른 블록버스터 영화들보다 홍보는 덜 요란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장 성공한 영화가 되었다.
기대를 훌쩍 뛰어넘은 큰 성공을 발판으로 속편이 제작되었다. 하나도 아닌 두 편을, 매트릭스 시리즈처럼 한꺼번에 촬영한 뒤 두 편으로 나누어 개봉한다는 소식이었다. 속편 이야기가 들려올 때부터 불안했다. 잭 스패로우를 더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분명 기쁜 일이었지만, 인기를 등에 업고 요란만 떤 속편들을, 그것도 하나로 족한 걸 억지로 두 편으로 늘려서 만들었던 매트릭스 시리즈의 실패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브룩하이머가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쏟아부었다느니, 브룩하이머와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한스 짐머가 음악을 담당하게 되었나느니 하는 이야기들도 위안을 주지 못했다. 영양가는 하나도 없고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한다는 명목으로 폭발의 규모와 CG사용 빈도만을 질릴 정도로 늘려 놓은 탓에 현실감은 도리어 상실한 대규모 액션장면이 계속되고, 그 때마다 장엄함을 가장한 배경음악이 흐르는, 그저 그런 블록버스터 영화가 되어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만 커질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캐리비안의 해적 2편은 이만저만 실망스러운 게 아니었다. 우스꽝스러움과 번뜩이는 카리스마 사이를 절묘하게 줄타기하던 잭 스패로우는 그저 우스꽝스러울 뿐인 개그캐릭터로 전락해 버렸다. 진정 잭 스패로우다운 모습이 나타난 건 크라켄에게 잡아먹히기 직전, "괴물아 안녕(Hello, beasty!)" 하고 씩 웃으며 한마디 내뱉는 장면 단 하나뿐이었다. 키라 나이틀리와 올랜도 블룸 역시 영화 내내 과장된 듯한 모습을 지우지 못했고, 화려하고 인상적인 액션장면(가령 돌아가는 물레바퀴 위에서의 전투장면이라거나)은 분명 있었으나 현실감과 진지함이 느껴지지 않아 어딘지 모르게 맥이 빠졌다.
게다가 악역이랍시고 등장한 녀석이 공교롭게도 [오만과 편견]에서 그 쪼다 역을 했던 배우라니. 그 녀석이 등장할 때마다 귀부인 앞에서 오줌을 지린 것처럼 엉거주춤한 포즈로 벌벌 떨던 [오만과 편견]의 장면이 떠올라서 웃음이 나와 견딜 수가 없었다. 한스 짐머가 1편의 테마음악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물론 그렇다 해도 원곡이 더 낫다).
2편에 워낙 실망을 많이 했기 때문에, 3편은 애초부터 2편과 비슷하겠거니 하고 기대치를 낮추고 있었던 터라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보고 즐길 수 있었다. 잭 스패로우의 개그 일변도도 좀 줄어들어서 다행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주윤발이 맡은 인물은 대체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에 비해 법전(!) 들고 무게 팍팍 잡으며 등장한 잭 스패로우 아버지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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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비안의 해적 - 세상의 끝에서
주절주절/영화
Posted at 2007/08/08 02:02


2007/08/09 01:16
2007/08/10 01:33
캐리비안의 해적도 그 점에서는 똑같지.
2007/08/11 18:33
아, 그 사람 아버지였어?? 우리둘다 집중력고갈로 슬슬 이해못할 때 등장해서 누군가했는데...;;;ㅋ
2007/08/12 19:41
해적들이 법전 앞에서 부들부들 떠는 게 참 어이가 없었지..;ㅎㅎ
2007/08/26 21:18
2007/08/27 20:17
아아..나도 1편만 찍고 말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데는 백프로 공감.
그렇지만 2편, 3편은 1편 성공 탓인지 돈은 엄청나게 벌어들였더라고. 영화사 입장에서는 돈 되는데 영화를 안 만들리가 없고...
깔끔하게 하나로 끝내길 기대할 수는 없는걸까.
[스위니 토드]는 꼭 챙겨봐야겠구나.
2007/10/11 08:05